"내가 조선일보 문제에 엄격한 이유는 조선일보 문제를 대단한 일로 생각해서가 아니라 기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야. 만 명의 사람에겐 만 개의 생각이 있을 수 있어. 그러나 사람에겐 사람임을 증명하는 기본이라는 게 있고 조선일보와 상종하지 않는 건 그 가운데 하나야.
조선일보에 글 쓰는 놈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아니야." (후배에게 쓴 편지)
- 김규항
"내가 조선일보 문제를 별로 엄격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조선일보 문제를 대단하지 않은 일로 생각해서가 아니라 매체간의 다양성과 독립성, 자율성이 보장된 상태에서 과점과 독점과 담합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공정거래 풍토를 조성하면 조선일보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야. 만 명의 사람에겐 만 개의 생각이 있을 수 있고 만개의 매체는 만개의 생각을 담을 수 있지. 물론 사람에겐 사람임을 증명하는 기본이라는 게 있고 조선일보와 상종하지 않는 건 그 가운데 하나지만 존재론적 차원에서까지 사람임을 부정해서는 안되지. 왜냐하면 때때로 우리 자신도 조선일보에 칼럼을 쓰듯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야.
조선일보에 글 쓰는 놈, 그 개새끼도 사람이야. 오히려 우리가 상대해야 할 대상은 내 안의 조선일보, 보이지 않는 적은 벌써 그렇게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거거든." (혼잣말)
- 모론
"그리고 세상에 악플에 시달려 마땅한 사람은 없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라고 김규항이 말할때 '조선일보에 글쓰는 놈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아니다' 라는 말은 단지 수사가 된다. 그러니까 저 글의 요지는 '조선일보에 글쓰는 놈은 아주 나쁜놈이다'라고 요약될 수 있다는 말이다. 차이가 없다라는 말은 바로 이럴때나 쓰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늘 말하다시피 난 한나라당 의원과 민주당 의원은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차이는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라는 말은 그러므로 너무 뻔뻔스런 말이다. 우리는 목하 그 차이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 경제인 대다수 좌파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이렇듯 어떤 하나를 기준으로 각기 다른 층위에 있는 차이까지를 무차별적으로 뭉개는 전략은 부작용이 클 뿐만 아니라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경제적 민주주의(양극화 해소)에 있어 실패했으니 민주주의에 있어서도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다고 평가했던 최장집 교수의 얼굴이 오버랩 되는 것이 괜한 일은 아니다.
파시즘과 공산주의 혁명,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더듬더듬 말했다. 군데 군데 헛점 투성이였다. 그러나 결국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런 것이다.
파시즘과 공산주의 혁명, 그리고 민주주의 거기에 얼마나 유의미한 차이들이 존재할까? 그걸 묻는 거였다. 우선 민주주의, 그것은 구체적인 이데올로기를 제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방법적 도구일 뿐이다. 그것은 하나의 틀거리이며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며 그 안에서 상이한 이데올로기들이 경쟁할 수 있다. 반면 파시즘과 공산주의, 그것이 조악하건 좀 더 그럴듯하건, 감성적이건 좀 더 이성적이건 모호하건 좀 더 구체적이건 간에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제시하고 구현하려 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거기에서 문제는 이데올로기 자체가 아니라 그 이데올로기를 구현하는 방법에 있다. 나는 그 하나의 예로 폭력을 든 것이다. 파시즘과 공산주의는 자신을 주장하기 위해 배제의 전략을 사용하고 그 배제를 위한 방법으로 폭력을 사용하며 그걸 또 정당화 한다는 말이다. 그게 민주주의의 원리를 정면으로 위배한다는 말이었다. 물론 민주주의가 상당정도 정착되었다고 인정된 국가에서 조차 국가폭력을 완전히 배제 할 수 없다는 건 사실이다. 오십보 백보, 바늘 도둑이나 소도둑이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히려 내가 말한 폭력은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뭉개는 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폭력에도 여러 갈래가 있다는 걸 간과한 것이다.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폭력, 생존권 박탈의 위기에 내몰렸을때의 저항 같은 것들, 그리고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들에 대한 합의되고 절제되고 폭력들, 그런 것들이 불가피하게 인정되어야 하고 민주주의는 폭력에 조차 다같이 똘레랑스를 발휘하게 한다는 것이다. 반면 파시즘이나 공산주의가 그 원리상 필연적으로 자행하게 되는 배제로서의 폭력은 질적으로 다른 무엇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걸 말한 것이고 더디게 가도 바르게 가야 한다는 걸 말한 것이다. 공공연히 자행되는 폭력과 구조 속에 은폐된 폭력, 어떤 세계에서 살고 싶냐고 하면 나는 기꺼이 후자를 택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공통점을 말한 것이고 그럼으로서 민주주의와의 차이를 드러내려고 했던 것이지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다같은 거라고 말하지 않았다. 체 게바라와 히틀러가 같다고 말한 것은 전쟁이라는 능동적인 폭력을 도구로 자신들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도모했다는 점, 그리고 그런 것들은 반드시 실패하고 말리라는 점, 성공한 듯 보여도 다시 제자리라는 점. 그걸 말한 것이다. 그러면 왜 이런 말들을 했느냐 하면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가 영 지랄맞아서다.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다는 것이 중론인 현 시점에서 고집스럽게 선 긋기를 하며 도덕/정의/선 이런 것들을 독점하려는 태도가 못마땅해서다. 물론 그런 고집스런 사람들이 어딘가에 한 명쯤은 있는 게 좋다. 똑같이 나 같은 사람도 어디쯤 한 명쯤은 있는게 좋다. 의견이 다르다고 하여 너 이새끼 죽어버리라고 주먹질을 하지 않는다. 힘쎈 놈이 약한 놈의 입을 틀어막고 사상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게 민주주의고 그것이 우리가 공유하는 가치인 것이고 지금 우리에게서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이다. 적은 분명하다. 방법은 모호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대로 때리면 맞고 잡아넣으면 잡혀가자. 무너져 내리고 있다 한들 아직 다 무너진 것은 아니며 방법이 없다고 한들 궁리와 모색을 멈춰서는 안된다. 희망을 가져야 한다. 민주주의를 지켜내자. 민주주의가 이명박 같은 덜떨어진 자가 정권을 집어 삼킨 것을 막지 않았듯이 우리의 소망을 짊어진 어떤 자가 다시 이 난장판을 바로잡는 것을 막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